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미의 이름 (문단 편집) === 배경 === 배경상으로만 언급되는 실존 인물들을 적는다. * [[요한 22세]] 당시 [[교황]]. [[아비뇽 유수]] 기간 동안 세속권을 늘리려는 교황의 움직임이 신자들에게 곱게 보일 리가 없고, [[주교]] 시절 [[필리프 4세|공정왕 필립]]과 함께 [[성당기사단]]을 박해한 건도 있었기 때문에,[* 작중에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갈린다. 노년의 아드소는 '박해'라고 여기지만, 우베르티노는 '당시 성당기사단의 작폐가 적지 않았다.'며 요한의 일처리가 적절했다고 주장한다.] 교황파 사절들을 제외한 작중 수사들은 요한 22세 이야기만 나오면 교황을 비난하기에 바쁘다. 노년의 아드소는 요한 22세를 교황명으로 안 부르고 원래 이름인 '카오르의 자크'라든가, 아예 '사교의 우두머리'나 '늙은 여우' 등으로 지칭했다. 윌리엄도 "이만큼 탐욕스러운 교황이 없었다." 하고 비판할 정도다. 그리고 "다시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거역스러울 이 요한이란 이름을 사용할 일은 없을 것"이라고 주장한다.[* [[요한 22세]]가 1334년 사망한 후 다시 요한이란 이름을 사용한 교황은 1958년 [[요한 23세]]가 등장할 때까지 600년 이상 걸렸는데, 이 부분을 표현한 것. 1410-15년에 재위한 [[대립교황]] 요한 23세가 있긴 했었으나 폐위되며 무효화되었다.] * [[루트비히 4세(신성 로마 제국)|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트비히 4세]] [[비텔스바흐 가문]] 출신 [[바이에른]] 공작이자 독일왕. 나중에 [[신성 로마 제국 황제]]로 [[대관식]]을 치른다. * 돌치노 극단적인 청빈을 주장하는 이른바 돌치노파를 일으켜 고위 성직자와 부자들을 척살하였다가 교황청에서 이단으로 정죄당한 [[수도자]]. 작중 시점에선 이미 종교재판으로 처형된 뒤이다. 그를 추종했던 옛 돌치노파의 잔당들이 수도원에 있었다. * [[로저 베이컨]] 영국 태생 [[프란치스코회]] 수사. 윌리엄의 스승으로 언급된다. * [[오컴의 윌리엄]] [[프란치스코회]] 신학자. 로저 베이컨과 함께 언급된다. 본래 에코는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려 했으나, 지나치게 소설이 딱딱해질 것 같아 가공인물인 베스커빌의 윌리엄을 주인공으로 했다고 한다. * [[토마스 아퀴나스|성 토마스 아퀴나스]] 작중 수도원장이 그의 시신을 들고 내려오면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. 아리스토텔레스를 신학의 범주에 끌고 온 사람인지라 호르헤 수사와 윌리엄 수사의 시학 2권을 둔 언쟁에서 언급된다. 하필이면 그를 시성한 이가 작중에서 틈만 나면 까이는 요한 22세인지라 '꿀돼지'로 비하되기까지 한다. * [[아시시의 프란치스코|성 프란치스코]] 교황파 수사들이 [[프란치스코회]] 수사들을 욕할 때 '거위를 타고 다닌 네놈들의 프란치스코' 정도로 욕하면서 언급된다. * [[니콜라오 3세]][* 움베르토 에코의 실수로 소설에선 니콜라오 2세라 나온다. ~~아냐 사실 우베르티노가 말실수한 거야.~~] 전 교황. 회칙 『Exiit qui seminat (그는 나가서 씨를 뿌렸다)』를 통해 [[프란치스코회]]를 옹호하며 이에 이의를 제기할 시 파문을 각오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. 우베르티노는 이를 자신의 주장에 인용해 교황파 사절들을 위협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